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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흥복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어 절 골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도화원이 있어 미술활동의 중시지였던 인사동은 조선시대(朝鮮時代)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仁)과 사(寺)를 각각 따서 부른 것이 현재의 인사동의 유래라고 한다. 예전의 인사동길은 종로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까지였는데,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동쪽으로는 낙원동(樂園洞) 서쪽으로는 공평동(公平洞)과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積善洞) 북쪽으로는 관훈동(寬勳洞)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에 속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원동(園洞), 승동(承洞), 대사동(大寺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인사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승동, 원동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인사동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출장소 제도 신설로 경성부 북부출장소 인사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경성부 인사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인사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인사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인사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인사동은 행정동인 종로1·2·3·4가동 관할 하에 있다.

 

조선시대 북촌과 종로사이에 위치한 인사동은 주로 중인들이 살았던 주거지역으로 조선 초기 이래로 조선 미술활동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명칭은 일제 통치시기인 1914년부터 불리워졌다.

1930년대에 이르러 인사동길 주변에 서적 및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해서 골동품 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의 낙원상가 아파트 자리에 낙원 시장이 형성되었다. 평양떡집이 들어선 이후 현재와 같은 떡집 골목이 형성되었다.

1970년대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업 화랑인 현대화랑이 들어서면서 상설 전시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속속 모여들어 미술문화의 거리로 성격이 강화 되었다.

1980년대에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 전통차음식점 판매 점포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전통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교통> • 1호선 종각역에서 하차 3번 출구로 나오셔서 도보로 3분 거리
• 1,3호선 종로3가역에서 하차 1번 출구로 나오셔서 도보로 3분 거리
• 3호선 안국역에서 하차 6번 출구로 나오셔서 도보로 1분 거리
• 5호선 종로3가역에서 하차 5번 출구로 나오셔서 도보로 3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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